“금니 삽니다.”

“없어요, 금니.”


역에서 또 그들에게 손목을 잡혔다. 어지간히 호구처럼 보이나 보다. 분주한 곳에서는 늘 인상을 쓰고 내 갈 길만 가려고 하는데 좀처럼 쉽지 않다. 오늘처럼 중요한 날에도 이런 일이 생기다니. 금니 삽니다, 금니 삽니다 – 고개를 돌려보니 그들은 벌써 다른 사람들에게 달라붙어 금니를 요구하고 있었다. 짝퉁 유니폼을 맞춰 입고 역사복원부에서 나왔다며 사기를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정부에서 직접 나온 경우는 거의 없고 불법적인 꿍꿍이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 사단은 몇 년 전에 시작됐다. 누군가의 부주의로 바이러스가 섞인 파일이 다운로드 되고 연결된 파일들이 삭제되는 흔한 패턴이었다. 전례 없던 규모와 속도로 일어났다는 게 문제였다. 대부분의 기록이 전자화되어 있었기에 이는 전인류적인 재앙이었다. 야금야금 사라진 정보만큼이나 황당한 건 똑똑해야 하는 사람들조차 이 문제를 놀랍도록 뒤늦게 인정했다는 사실이었다. 인간들은 다시 종이에 정보를 기록해야 했고 마치 병아리가 된 불사조처럼 비극적으로 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우연 끝에, 인체에 일정기간 이상 이식된 적 있는 금속에는 바이러스의 영향을 받지 않고 대용량의 정보를 저장하고 회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확히 어떤 기괴한 실험으로 이 사실이 발견되었는지는 교과서에서 읽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교통사고나 관절염으로 심은 티타늄 칩이나 임플란트로 심은 이뿌리 같은 것이 CD, 블루레이, USB 등을 대체하게 됐다. 대신 바이러스가 출현하기 이전에 인체에 이식된 적 있었던 금속만이 내성을 갖고 있었다. 당시 70억 인구 중 몸에 금속 두어 개를 붙이고 살던 사람들은 꽤 많았다.


연합정부는 임시방편으로 사람들에게 정부보조금을 주며 이 ‘바이오드라이브’라고 불리게 된 금속들을 회수하고, 새로운 수술이나 교정장치를 무료로 제공했다. 사기업이 바이오드라이브를 수집하는 건 불법이었지만 정부보조금보다 더 매력적인 조건을 내걸곤 했다. 정보를 클라우드에 저장하든, 파피루스에 써넣든, 인간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나보다.


임시방편이 ‘임시’인 동안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과학자들은 바이러스를 물리칠 방법을 찾지 못했고, 서버가 없는 세상에서는 연구도 협력도 더디게 진행됐다. 정부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퍼줄 보조금이 없었다. 반정부주의와 테러는 서버 없이도 잘만 이루어졌다. ‘황당한 퇴화라고 볼 수 있지. 아니, 어쩌면 진화일까.’ 역사복원부에서 일하시던 나의 할머니가 했던 말씀 중 하나다. 할머니는 병상에서 천천히 죽음을 맞이했다. 정부가 새로 달아준 인슐린 모니터가 불량이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공무원이라서 가장 먼저 바이오드라이브를 회수당했던 할머니다. 퉁퉁 부은 손으로 나를 잡으시며 당신의 육신은 여기서 끝나지만 정신만큼은 ‘늘푸른 내마음의 고향’으로 간다 하셨다. 나는 할머니가 ‘영혼’이 아니라 ‘정신’이라고 말하셨던 걸 또렷이 기억한다.


지금 내 주머니 속에는 할머니의 금니가 있다. 금, 그 중에서도 치아를 대체하던 금니는 안정적인 구조 덕분인지 용량과 안정성 면에서 최고의 바이오드라이브였다. 암시장에서 요령 있게 굴기만 한다면 나도 ‘늘푸른 내마음의 고향’ 정도에는 문제없이 갈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빠져나오니 8년 전부터 고장나있는 기온조절계가 삑삑거리고, 광장 시계탑 아래의 수은계가 41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길에서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누워있었고 얼음을 파는 리어카에도 어김없이 ‘금니 삽니다’가 붙어 있었다. 정오가 되면 시계탑에서 정부의 보여주기식 복지의 극치인 냉각 가스가 배포될 예정이었다. 정오에 시계탑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몸을 숨길 곳이 마땅치 않아 열사병을 앓은 지 오래되어 이 곳이 도시인지 늘푸른 내마음의 고향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나는 허접한 양산을 움켜쥐며 빠른 걸음으로 시청으로 향했다. 손톱만한 땀을 빼곡히 흘려가며, 나는 멸종한 동식물과, 언어와, 문화, 예술과 역사를 생각했다.

“역사복원부 직속 경찰입니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갑자기 진짜 유니폼을 입은 여자가 나를 세웠다. 벌써 시청이 코앞이었다.

“너무 더워요. 저는 시청 청사 안에 볼일이 있습니다. 사망신고를 하러 가고 있어요.” 최대한 슬픈 얼굴을 해 보였으나 경찰은 내 앞을 막아섰다. “신분증을 보여주십시오. 현재 거주지 주소가 어떻게 되십니까?”

“신분증은 집에 뒀습니다. 역사 동쪽의 공동주택에 삽니다.”

“공동주택이요? 그 곳은…”

“맞습니다. 공무원과 그 가족들이 사는 건물입니다.” 나는 경찰의 말을 자르고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역사복원부 소속이라 하셨지요. 저와 이웃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이사를 가야합니다. 공무원이던 가족이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사망신고서를 뒤늦게 제출해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72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생체데이터도 제출하려고 했지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경찰은 사망신고서를 읽어보더니 슬쩍 내 눈치를 봤다. “이 이름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가족 사이셨군요. 늦기 전에 제출하십시오.” 서류를 돌려 받자 마자 나는 고개를 끄덕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돔 형태의 시청 지붕이 지글거리고 있었다.   


“망자에게 애도를.” 경찰이 혼잣말 하듯 내 쪽을 향해 말했다. 나는 돌아보지 않고 - 망자에게 애도를 - 입 안으로 그 문장을 읊었다. 애도할 일은 앞으로도 더 많이 남았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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