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비는 재빨리 그녀가 찾는 병을 건네준다. 프리스비가 그녀와 함께 이 일을 한지도 어느새 몇 년이나 됐다. 몇 번이나 겨울이 지나고 수백 번의 호통과 냉소를 버텨낸 프리스비는 어느새 그녀가 입을 떼기 전 짓는 미세한 표정으로 다음에 그녀가 뭘 말할지 알아맞히는 경지에 다다랐다그녀가 병을 기울여 바닥에 누운 남자의 입에 가져다 댔다. 남자는 죽은 지 오래인 듯 추운 공기에서도 퀘퀘한 냄새가 났다. 게다가 그녀가 아끼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덮어놓은 걸 보니 아무리 이름난 해결사인 그녀에게도 보기 불편한 죽음이 있는 모양이다. 프리스비는 양손을 얌전히 모으고 그녀가 시체의 -시체가 아니라면 정말 곤란할만한 행색의- 입가에 병에 든 액체를 조금씩 흘려 넣으려는 것을 지켜본다. 그녀는 오늘 밤, 평소와는 다르게 잔뜩 긴장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나 중요한 의뢰였던가? 프리스비는 문득 자신이 이번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점이 거의, 아니,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큰일인데. 그녀가 뭐라도 묻기 시작하면 어쩌지? 프리스비는 안절부절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그녀의 표정에 집중했다. 찌푸리거나 무표정인 채로 작업에 임하는 평소와는 달리, 그녀는 절박하고 다급해 보인다. 그러던 그녀가 프리스비에게는 말도 없이 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 직접 양초에 불을 붙인다.  하며 붙은 성냥불과 순간적으로 밝아진 눈앞에 프리스비는 잠시 얼떨떨하다.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프리스비는 추위에 오그라 붙은 입술을 연다


아가씨, 제게 시키시면 될 일인데…” 


그러나 프리스비가 말하려 했던 문장은 문장이 되지 못한다. 한 손에 양초를 든 그녀가 아주 천천히 시체의 얼굴에 덮여있던 소중한 손수건을 거둔다. 프리스비는 그때, 그제서야 볼 수 있다. 그들의, 아니, 그녀의 이번 의뢰의 주인공은 프리스비 자신이었음을


프리스비, 내가 왔어. 늦어서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볼에 닿는 그녀의 손은 날씨에 비해 이상하리만큼 따스하고 부드럽다. 이제서야 프리스비는 여태 왜 그녀가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지, 왜 자신에게는 이 무덤가에 오기전까지의 기억이 없는지 깨닫는다. 병을 건네준 것은 자신이 아니었음을. 자신의 몸은 이 겨울에도 퀘퀘한 냄새를 내며 딱딱하게 얼어붙은 언덕 위에 뉘여있음을. 양초에 붙은 불이 사정없이 흔들린다


아가씨, 저는 이제 어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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