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 말을 하는 소년의 눈은 아주 까맣고 단호해서, ‘알고 있어도 말해주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는 듯했다. 나는 그의 눈빛에 기분이 팍 상했다. 여름 밤 초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목격한 것은 우리집 양떼뿐이다. 예전에 돌봐 드리던 노인의 소개로 찾아간 이 소년이 아니었다면 우리집 양들이 그때 거기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그는 방금 전까지 양들 사이에 서서 양들과 눈을 맞추고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그새 내려앉은 이슬을 눈치챈 소년이 잔뜩 인상을 쓰고 어깨를 툭툭 털었다. 그는 아주 피곤해 보였다. 나는 이 새벽에 자다가 끌려 나오다시피 한 그가 좀 불쌍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 또한 이 새벽에 당나귀를 타고 다리를 건너 그를 데려와야 했다. 따지고 보면 더 불쌍한 건 내 쪽이다. 내가 동물과 얘기할 줄 아는 능력이 있었다면 당나귀가 나를 개울가에서 걷어찰 때 욕을 퍼부어 주기라도 했을 텐데. 나는 누나가 건넨 유리병을 눈에 문지르며 소년을 흘겨봤다.


정말로 물어본 거 맞아?”


내 퉁명스러운 말투에 누나가 내 뒤통수를 갈겼다. 버릇없이 굴지 마! 누나는 언제나 그들을 동경했다. 소년을 포함해 마을에는 옛날부터 그런 사람들이 몇 있었다. 동물과 말이 통한다 거나 유난히 별을 읽는 눈이 밝고, 작물이 병에 들지 않게 지켜주는 사람들. 우리를 대할 때면 어색하게 얼굴이 굳고 어지간한 대가 없이는 우릴 도와주지 않았고, 또 아무리 작은 일이든 종이에 기록하는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누나는 굳이 내 말투가 엄청난 모독이라고 느끼나 보다.


양들은 그 때 그 자리에 없었어요.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다시 거기로 데려가 주시죠.” 소년은 나를 깡그리 무시하고 누나에게 말했다. 누나는 짐짓 진지한 표정을 하고 초원으로 가는 지름길을 가리켰다. “이 길로 가도록 해요.” 안개는 아까보다도 훨씬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 안개를 뚫고 작은 개울을 지나면 꽤 근사한 초원이 나온다. 밤에는 양들을 풀어 반딧불을 먹게 하는 초원이다. 동물 우리 뒤 오동나무 옆에는 우리가 사는 오두막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어제 밤까지는 있었다. 오동나무도, 우리집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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