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스물 일고여덟 정도이고 앞서 받았던 인상보다 더 얼굴이 하얘서 역시 미남이구나 생각했어요. 근데 미남이면 뭐 하나요, 제가 그 자식 얼굴 뜯어먹으며 일할 것도 아니구요.”



후배의 맥주 오백 잔이 금새 바닥을 보였다. 빈 잔을 허공에 들고 흔드는 후배를 본 알바생이 후다닥 달려와 그 잔을 가져갔고 후배는 빈 주먹을 테이블 위로 내려쳤다. 치킨 뼈를 바를 때 썼던 포크가 그릇과 부딪쳐 덜그덕 소리를 냈다.



“아니 글쎄, 팀장이랑 상무랑 와가지고 막 잘생긴 부사수 붙여줘서 자기들한테 고맙지 않냐는 거 있죠? 돌았나 진짜.”



어찌나 씩씩대며 열변을 토하는 지 귀 뒤에 야무지게 꽂아주었던 칼 단발이 쏟아졌다. 얼굴을 반쯤 가린 머리카락을 귀찮다는 듯 손바닥으로 치워버린 후배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마치 윙크를 하듯 왼쪽 눈만 느리게 깜빡 거리는 얼굴. 머리 꼭대기까지 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손바닥으로 밀어버린 머리카락은 금새 다시 쏟아져 눈을 가렸다. 고개를 흔들며 머리카락을 치워보려고 애쓰는 주정뱅이를 대신해 귀에 머리를 넘겨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야가 밝아져 기분이 좋은 건지 아니면 내가 자신의 말에 동의해주기를 기다렸던 모양인지 알 수 없었지만 후배가 다시 모터를 단 듯이 떠들기 시작했다.



“막 꽃 같은 후배 들어와서 너무 부럽다면서. 난 니들이 더 부럽다 이 새끼들아.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솔직히 후배 가르치는 거 귀찮잖아요.”



알바가 새로 채워온 오백잔을 빼앗듯이 손에 쥔 후배가 금새 또 잔을 비웠다. 자꾸 소매로 입을 닦아 버릇해서 셔츠 소매에 립스틱 자국이 가득했다. 코로 한숨을 쉬며 테이블 위에 턱을 괸 나를 보던 후배가 웃었다.



“언니, 나 취했나바.”

“…갑자기?”

“응. 언니 앞에 잔 두 개가 네개로 보여요.”



아하하하하하! 후배가 박수를 치며 웃더니 화장실을 가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청휘청 할 것 같아서 아까 신발을 바꿔 신은 참이었다. 여의도로 출퇴근 하는 커리어우먼 같은 셔츠와 치마 밑으로 어울리지도 않는 아디다스 운동화가 보였다. 저걸 신고 발목이 꺾여 바닥에 구르지는 않지 싶었다. 평소라면 따라 일어났을 테지만 오늘은 그냥 후배를 혼자 보냈다. 후배가 밀고 나간 문이 닫히자마자 휴대폰 액정에 불이 들어왔다.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이미 손가락이 액정을 밀어 전화를 받고 있었다.



“여보세요?”

[ 선배! 시끄럽네. 아직 있어요? 처음 거기? ]

“응, 아직 처음 거기.”

[ 오래도 있네. 엄청 씩씩거리더니… 장난 아니게 들이붓고 있나 보네. ]

“내 앞에 잔 두 개가 네 개로 보인데.”

[ 많이 마셨네. ]

“많이 마셨지… 잔은 사실 하나거든.”



주위가 시끄러워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웃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수화기를 귀 가까이 붙이면서 소리를 키웠다. 낮은 목소리가 껄껄 웃는 걸 좋아했는데 제대로 들리지 않아 아쉬웠다.



[ 저 지금 야근 마쳤는데. 지금이라도 갈까요? ]

“오지마. 이제 파할거니까.”

[ 진짜? ]

“진짜.”

[ …그래요. 조심히 들어가구요. ]

“오냐.”



전화는 금새 끊어졌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