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16



그 것은 옛날 그에게 읽고 쓰기를 가르쳐준 어머니의 필적이었다.


모난 곳 없이 꺾은 선들과 일그러진 곳 하나 없는 정확한 동그라미. 그가 편지 봉투에 정갈히 수 놓인 글씨의 주인을 알아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책상 서랍에 손을 넣어 편지들을 그러모아 쥐었다. 꼭꼭 봉인된 어머니가 적은 수많은 편지가 두 손 가득히 잡혔다. 


동네의 서신이란 서신은 모두 도맡아 적어주던 어머니였다. 자네 필체가 고우니 대신 좀 적어주소. 어머니는 항상 예예, 웃으며 대필을 해주었다. 하지만 대필을 끝내고 나서는 그에게 속마음을 말하곤 했다. 사실 어머니는 대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글씨를 쓸 때마다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그렇다고 했다. 엄한 사람이었다고 들었다. 계집애가 글은 배워 무엇하느냐. 글짓기 하여 무엇에 쓸테냐? 정 글이 배우고 싶거든 글씨를 정갈히 쓰거라. 삐뚠 획에 손등 회초리 한 대. 아래로 기울어지는 문장에 종아리 한 대. 그리 배운 글씨였다. 어머니는 그리 배운 글씨로, 제 글은 못 쓰고 다른 사람 편지만 대필하다가 가셨다.


그런 줄만 알았다. 그는 손에 쥔 봉투를 하나하나 넘겨보았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에게. 사랑하는 어머니께. 아버지께. 그리운 우리 언니야. 어머니가 그 예쁜 글씨로 한자 한자 눌러 담은 마음이 서랍 속에 가득했다. 대필한 편지들은 다 우표 날개를 달고 멀리 멀리 닿았는데. 어머니의 마음은 이 서랍 속에 오랫동안 잠자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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